매일QT로시작 2014. 8. 23. 09:04

14.08.23 토요일

'365 이야기'

 

당신은 의롭다 함을 입었습니까?

 

우리 죄는 사형에 행당하지만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죄로 선언하신 것입

니다. 의롭지 않은데 의롭다 하시고, 선하지 않은데

선하다 하시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인데 용서받은

죄인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 사함을 선언하셨고, 예수님은 그 선언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그 선언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칭의'라는 말은 너무 소중하고 귀한 말

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내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

리가 믿는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결과는 거듭남입

니다. 마지막 열매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입니다.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

라"(롬 3:28).

 

<감사의 저녁 -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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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QT로시작 2014. 8. 22. 10:45

14.08.22 금요일

'365 이야기'

 

주님의 피 흘리심과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왜 주님께서 피를 흘려야 했을까요? 피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레17:11). 화목제물의 핵심은 예수 그리

스도의 십자가요, 십자가의 핵심은 십자가에 흘리신

피입니다. 고난이나 조롱은 부가적인 것입니다. 피가

뿌려지지 않았다면 죄도 사라지지 않았고 생명을 얻

지도 못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화목제물 주신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

통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줄로 착각합니다. 내

가 하나님을 예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

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

물을 드린 것입니다.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크신 하

나님께서 인간을 살려야겠는데 달리 방법이 없으니

까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

라"(요일 4:10).

 

<사랑하는 그대에게 -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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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QT로시작 2014. 8. 21. 10:48

14.08.21 목요일

'365 이야기'

 

그리스도인에게는 억울함도 없고 분함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손해보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손해는 예수님 안에서 다시 이익으로 변하기 때문

입니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구레네 시몬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난 후 변화

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옆에 있다가 십자가를 대신 지

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자신

의 유익인줄 몰랐습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이 누

군지 알았거나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면,

주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린 막달라 마리아 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시간의 그의 일생

에 얼나마 영광 스러운 시간이었겠습니까? 그러

나 그는 당시에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인

류 역사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나누

었던 단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우리 삶 속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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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QT로시작 2014. 8. 20. 08:37

14.08.20 수요일

'365 이야기'

 

이스라엘 백성은 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제사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필요합니다. 제물이 없는

제사는 없습니다. 소든 양이든 비둘기든 제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단 위에서 제물이 피를 흘리고 소리 없이 죽어

가는 모습을 예수님께 비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고, 조롱을 당하고, 가시 면

류관을 쓰고, 창에 찔리는 모습이 제단 위 제물과

같다고 말합니다.

 

매우 충격적인 그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그

림을 그리지 않고 예수님께서 죽으신 사건을 이론적

으로만 접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양심과 도덕, 영혼에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하는 것

입니다.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생명이 필요합니다. 돈

으로 사거나 매를 맞거나 고문을 당하는 것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신 것입

니다.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

자가를 천천히 묵상하면 기절할만큼 충격을 받습

니다. 나를 위해 내 자녀가 죽는 것보다 더 큰 사건

이요, 자녀를 위해 부모가 죽는 것보다 더 큰 사건

입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감사의 저녁 -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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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QT로시작 2014. 8. 19. 09:06

14.08.19 화요일

'365 이야기'

 

내가 쉽게 빠지는 무지와 무관심의 영역은 어디입니까?

 

예수님을 재판할 때 빌라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너희들의 법에 따라 재판하라."

이때 빌라도는 매우 귀찮게 생각했을것입니다.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재판의 본질을 알아차리는 예

리한 눈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가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재판이 인류의 재판이라는 것을 몰

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재판이라는 것을 몰

랐습니다. 무지는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은 무책임을

낳습니다. 무책임한 사람은 시종 수수방관할 뿐, 자기

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릅니다. 이는 아주 무서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교회에 나올 때 정신 똑바로 차리십

시오. 교회 나오기 전에 기도로 준비하십시오. 신랑을

만나는 신부처럼 예배를 드리십시오. '적당히 믿으나

열심히 믿으나 끝나면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하지 마십

시오.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날마다 깨어 열심히 믿

으십시오. 바로 나 자신이 아름다운 신부라는 것을 발

견할 것입니다. 누앞에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볼

것입니다. 아름다운 신부인 당신을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6).

 

<감사의 저녁 -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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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QT로시작 2014. 8. 18. 18:17

14.08.18 월요일

'365 이야기'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을 충실하게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문 지키는 여자가 베드로를 예수님

의 제자라고 알아보자, 절대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사람

은 한번 겁먹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쩔쩔 매게

됩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문지기 여종을 두려워하

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신앙 고백마저 부인하게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베드로는 상상속의 불안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때로 우리 인생에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어쩌면 건강

을 잃고 직장에서 내몰릴지도 모릅니다. 다음 직장이

구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갑자기 불안해지면서 불안이 현실을 점점 지배하게 됩

니다. 사람이란 원래 좋은 상상보다 최악의 상상을 하

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고 믿는 기준들이 자꾸 흔

들려서 불행한것입니다. 내 건강이나 직장, 인간관계

등이 불완전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우리 삶

의 기반을 불완전한 것에 두지 마십시오. 완전한 말씀

위에 미래를 세우십시오. 불안한 생각에게 휘둘리지 마

십시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25).

 

<감사의 저녁 -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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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QT로시작 2014. 8. 16. 09:05

14.08.16 토요일

'365 이야기'

 

기도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고 잠잤던 베드로의 경우를

통해 그 단적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

이에 칼을 뽑아 순식간에 앞에 있는 사람의 귀를 쳤습니

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마 26:51)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충동적인 행동을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적이며, 본능적인 행동을 합니다. 언어

생활도 충동적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기도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은 어쩔 수 없

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상대방의 귀를 자르고 말았습니다. 일단

잘못했으면 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잘못자체보다도,

그것을 뉘우치치 않는 것이 더 나쁜 것입니다. 칼을 쓰셨

으면 칼집에 그대로 꽂으십시오.

 

우리가 칼을 칼집에 다시 꽂으면 예수님이 그 사람의 귀

를 고쳐 주십니다. 치유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겸손하게 회개하고 순종하

면 하나님의 손이 이땅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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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QT로시작 2014. 8. 14. 09:41

14.08.14 목요일

'365 이야기'

 

하나님께서는 우리게 회복할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 번 배신한 베드로

에게 회복의 기회를 세 번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추위 때문에 숯불을 피워 놓은 가야바 법정에서 예

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

서 숯불을 피워 놓고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의 능력이 얼마나 되냐?

네가 완벽하냐?"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또한 "네

가 얼마나 많이 배신 했느냐?"고 책망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어보셨을 뿐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예수

님의 깊은 배려입니다.

 

주님은 자신감을 잃은 사람, 본인에게 스스로 실망

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

수님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

니다. 나를 회복하시기 원하는 예수님께 사랑한다

고 고백하십시오.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

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

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요 21:16).

 

<감사의 저녁 -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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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QT로시작 2014. 8. 13. 17:15

14.08.13 수요일

'365 이야기'

 

예수님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한한 사랑입니다. 왜 못난 우리를 사랑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분의 선택과 은혜 외에

해답이 없습니다. 그냥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입은 것

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

랑은 한 순간으 뜨거운 열정이 아닙니다. 흔히 사랑을

생각하면, <로미오와 줄리엣>,<노틀담의 꼽추>,<겨울

연가> 등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는 환상적이

고 열정적인 사랑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열

정은 영원한 사랑이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면 변하고

맙니다.

 

사랑은 감정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의

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모든

상황이 변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사랑하신다는 의지

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안전합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그 변치 않는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

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감사의 저녁 - 하용조>

posted by joy&grace
:
매일QT로시작 2014. 8. 12. 08:32

14.08.12 화요일

'365 이야기'

 

당신은 한없이 낮아져 남을 섬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야 합니까?

 

겸손으로 해야 합니다.

자기가 드러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

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 내 주장, 내 방법만 밀고 가면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주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일하면

서도 갈등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갈등을 주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섬길 때 '겸손'이라는

이 한 단어를 잊지 마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

었고(빌 2:5~7).

 

<행복한 아침 - 하용조> 

posted by joy&grace
: